학교 위험성평가, 교실 말고 어디를 봐야 할까 — 중·고등학교 세 곳에서 되풀이된 장면들
한여름, 학교 시설 담당자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 지하 기계실 문을 열었습니다. 붉은 소방 배관과 펌프가 들어찬 방, 바닥 한쪽에는 덮개를 들어 올려야 보이는 배수 구덩이가 있었습니다. 학교 위험성평가를 의뢰받으면 많은 분이 교실과 과학실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이 지키려는 사람, 곧 학교에서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시설관리·조리·미화 종사자가 실제로 하루를 보내는 곳은 이런 문 뒤편입니다. 2023년과 2024년에 걸쳐 중학교 두 곳과 고등학교 한 곳의 정기 위험성평가를 맡았습니다. 세 학교는 건물도 일하는 사람의 구성도 달랐지만, 그 문 뒤에서 마주친 장면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평가 대상학교의 ‘일터’는 공간 목록이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한다
학교 위험성평가의 첫 실수는 평가 대상을 교실 배치도에서 고르는 것입니다. 배치도대로 돌면 교실과 교무실은 빠짐없이 보지만, 시설 담당자가 매주 내려가는 펌프실이나 미화 담당자가 세제를 덜어 쓰는 화장실 개수대는 ‘공간’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가 대상을 정할 때 공간보다 사람을 먼저 봅니다. 학교 안에서 누가 몸을 쓰는 일을 하는지, 직접 고용한 인력인지 용역 인력인지, 그 사람의 작업이 어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따라가면 배치도에 없던 점검 지점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세 학교 모두 현업 종사자의 작업을 평가 대상으로 삼고, 그 작업이 일어나는 곳을 전부 도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학교는 일하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이 뒤섞인 곳이라는 점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습니다. 급식·청소·경비 같은 용역 인력, 조리 종사자, 교사, 외부 방문객이 같은 건물을 쓰고, 그 사이로 호기심 많은 학생과 이동에 도움이 필요한 특수학급 학생이 지나다닙니다. 작업자를 위해 잠가야 할 문이 학생에게는 피난 통로일 수 있고, 학생을 위해 둔 시설이 작업자에게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한 학교 보고서에는 학교 현업 종사자 재해 가운데 급식실 비중이 78.7%라는 안전보건공단 통계(2020년)를 실어, 급식실을 따로 깊게 보되 다른 직무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았습니다.
공통 패턴세 학교에서 반복해 본 다섯 가지 장면
아래는 특정 학교의 지적 목록이 아니라, 여러 학교에서 또는 한 학교 안의 여러 곳에서 되풀이해 마주친 유형을 묶은 것입니다. 학교 시설이라면 어디서든 다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을 담아 두는 곳 아래에 밀폐공간이 숨어 있다
소방용 수조, 옥상 물탱크실, 지하의 배수 펌프 구덩이처럼 물을 모으고 퍼 올리는 시설은 학교마다 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지만, 청소나 펌프 교체 때는 사람이 몸을 넣어야 합니다. 이런 곳은 산소가 부족하거나 유해가스가 고일 수 있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 정한 밀폐공간에 해당하는지부터 따져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물 저장 설비’로만 여겨 관리 대상에서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권한 순서는 단순합니다. 먼저 학교 안에서 밀폐공간에 해당할 수 있는 곳을 목록으로 만들고, 출입구에 출입금지 표지를 붙입니다. 그다음 들어가기 전에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재는 절차, 밖에서 지켜보는 감시인, 비상시 끌어올릴 장비를 묶은 밀폐공간 작업 프로그램을 문서로 정합니다. 학교 직원이 직접 들어가지 않고 외부 업체에 맡기더라도, 그 업체가 이 절차를 지키는지 확인할 책임은 학교에 남습니다.

기계실의 돌아가는 축과, 어느 쪽이 잠금인지 모르는 밸브
오래된 학교 기계실의 펌프는 모터와 펌프를 잇는 축이 그대로 드러난 경우가 있습니다. 점검하던 사람의 소매나 장갑이 갑자기 돌기 시작한 축에 감기면 큰 사고로 이어집니다. 축 둘레를 덮는 덮개나 울을 씌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책입니다.
밸브도 같은 맥락입니다. 쓰는 소방 배관과 더 이상 쓰지 않는 온수 배관이 한 공간에 섞여 있고, 흐름 방향도, 평소에 열려 있어야 하는지 닫혀 있어야 하는지도 표시되지 않은 곳이 있었습니다. 급할 때 엉뚱한 밸브를 돌리면 화재 대응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배관에 흐름 방향을 표시하고, 밸브마다 정상 상태(열림·닫힘)를 적고, 함부로 돌리지 못하도록 잠금장치와 꼬리표를 다는 것, 압력계에는 정상 범위를 표시해 두는 것을 함께 권했습니다.


물과 전기가 같은 바닥을 쓴다
세 학교 모두에서 가장 자주 적은 유형입니다. 정수기 물통을 갈다 흘린 물이 바로 옆 바닥의 멀티탭으로 흘러가고, 대걸레를 빠는 개수대 옆에 뚜껑 없는 콘센트가 있고, 비가 오면 천장에서 새는 물이 바닥의 멀티탭 위로 떨어졌습니다. 물기가 남은 바닥에 뚜껑 없는 멀티탭과 전선이 그대로 놓인 곳도 있었습니다.
대책은 비싸지 않습니다. 물을 쓰는 자리 근처의 콘센트는 물이 튀지 않는 높이로 올려 벽에 고정하고, 바닥에 둘 수밖에 없다면 방수형 멀티탭으로 바꿉니다. 쓰지 않는 콘센트는 배전반에서 전원을 끊습니다. 바닥을 가로지르는 전선은 몰딩으로 덮어 걸려 넘어질 위험도 함께 없앱니다. 정수기 호스 아래에 콘센트가 있다면 위치를 바꾸라는 조언도 했습니다. 물이 새면 곧바로 전기에 닿는 배치이기 때문입니다.

키보다 높은 곳에 무거운 물건을 올려 둔다
교실 뒤 사물함 위의 철제 책장, 교과교실 책장 꼭대기의 서류 상자, 준비실 선반 위에 겹겹이 올린 의자. 학교는 공간이 늘 모자라서 위로 쌓습니다. 작은 충격이나 아래 물건을 꺼내는 손길에도 그 무게가 사람 머리 위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허리 높이 아래로 내린다’를 기본 원칙으로 제안했습니다. 꼭 위에 둬야 한다면 넘어지지 않게 벽이나 가구에 고정하고, 무거운 것일수록 아래 칸으로 옮깁니다. 정리하는 김에 통로에 쌓인 물품도 치우면 걸려 넘어지는 위험까지 함께 줄어듭니다.


화학제품과 공구는 급식실보다 시설 창고에서 관리가 비어 있다
조리 쪽은 세제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와 교육을 갖춰 두었는데 미화·시설 쪽은 비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미화 담당자가 쓰는 표백제, 시설 담당자가 보수할 때 쓰는 시멘트·페인트·우레탄·에폭시, 기계에 넣는 휘발유·경유와 엔진오일이 관리 목록에서 빠지기 쉬운 품목입니다. 덜어 쓰는 작은 용기에 아무 표시가 없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학교에서 쓰는 제품을 한 번 전수 조사해 MSDS를 받아 비치하고, 다루는 사람에게 교육하고, 소분 용기에 경고 표시를 붙이는 세 단계를 권했습니다.
시설 창고에는 휴대용 연삭기, 고속절단기, 용접기 같은 공구도 함께 있습니다. 연삭기 숫돌 덮개가 제대로 체결되어 있는지, 절단할 때 튀는 불꽃이 닿는 거리에 부탄가스나 연료통이 있지 않은지, 용접기의 접지선이 살아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불꽃이 생기는 작업을 할 때는 주변 가연물을 치우고 소화기와 불꽃 비산 방지포를 준비하라는 것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의 요구이고, 창고 안에 위험물 보관 장소를 따로 정해 두면 이 조건을 맞추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학교별 차이같은 학교라도 조건이 다르면 보는 순서가 달라진다
공통 패턴만큼 중요한 것이 차이입니다. 세 학교는 건물의 나이, 일하는 사람의 구성, 학교가 미리 준비해 둔 자료가 달랐고, 그에 따라 우리가 시간을 더 쓴 곳도 달랐습니다.
| 무엇이 달랐나 | 그래서 우리가 더한 것 | |
|---|---|---|
| 사례 ① | 교직원이 평소 느낀 위험을 미리 정리해 둔 청취조사 자료가 있었고, 바깥 사람의 눈으로는 잡아내기 힘든 세밀한 내용까지 담겨 있었음. 오래된 실내 체육시설과 특수학급 학생의 이동 동선이 있었음 | 청취조사 항목을 먼저 평가표로 옮긴 뒤 순회점검으로 보완. 천장에 매단 설비와 오래된 통로 난간은 눈으로 판단하지 않고 전문 진단을 받도록 권고. 난간이 없는 계단에 난간 설치, 여름철 뜨거워지는 금속 손잡이 안쪽에 나무 봉을 덧대는 방안 제시. 위험성평가 실시규정 초안과 공사 발주 관련 법률 검토를 함께 제공 |
| 사례 ② | 여러 동의 건물을 지하부터 옥상까지 돌아야 했고, 비가 오면 물이 들어오는 지하 공간과 난간 없는 옥상 가장자리가 있었음 | 물고임·침수가 생기는 동선을 따로 묶어 배수 설비와 전기 설비 높이를 함께 검토. 옥상 단부 난간, 지하 수조·물탱크의 밀폐공간 관리를 우선 과제로 정리 |
| 사례 ③ | 교무실과 교과교실 중심의 건물에, 영선 작업을 하는 시설 자재창고가 함께 있었음 | 교실 쪽은 높은 곳 적재와 전선 관리에, 창고 쪽은 공구·연료·도료가 한 공간에 섞인 문제(화재위험작업)에 시간을 나눠 씀. 유해·위험 기계·기구 관리대장을 만들도록 제안 |
표에서 보듯 같은 ‘학교 위험성평가’라도 출발점이 다릅니다. 교직원이 이미 위험을 잘 알고 있는 학교라면 그 목소리를 평가의 뼈대로 삼는 것이 가장 빠르고, 건물이 넓고 오래된 학교라면 비 오는 날과 지붕 위처럼 평소 보지 않는 장면을 일부러 찾아가야 합니다.
평가 방법척도는 학교 크기에 맞추고, 허용 기준은 점검 전에 정한다
세 학교 모두 위험의 크기를 ‘일어날 가능성 × 다쳤을 때의 심각성’으로 매겼지만 척도는 달랐습니다. 2023년 학교는 각각 3단계로 나눠 1~9점으로, 2024년 두 학교는 5단계로 나눠 1~25점으로 판단했습니다. 3단계 척도는 담당자 한두 명이 스스로 다시 평가하기 쉽고, 5단계 척도는 항목이 많은 큰 건물에서 우선순위를 더 잘게 가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다기보다, 내년에 학교가 직접 다시 돌릴 수 있는 쪽을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척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몇 점부터 받아들일 수 없는가’를 점검 전에 정해 두는 일입니다. 현장을 본 뒤에 기준을 정하면 마음에 걸리는 항목만 높게 매기는 자의적 평가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착수 단계에서 점수 구간별로 즉시 개선, 계획적 개선, 현 상태 유지를 미리 나눠 두었습니다. 대책은 위험을 없애거나 바꾸는 방법을 먼저, 덮개·연동장치 같은 설비 대책을 그다음, 절차와 표지를 그 뒤에, 보호구를 마지막에 두는 순서로 적었습니다. 2024년 두 학교의 평가표에는 대책을 실행한 뒤의 예상 점수도 나란히 적어 학교가 효과를 가늠할 수 있게 했습니다.
평가를 학교 손에 넘기는 준비도 했습니다. 2023년 학교에서는 평가 첫날 관리자와 급식·행정 담당자를 모아 위험성평가의 목적과 절차를 설명하는 교육을 먼저 했고, 이듬해부터 학교가 스스로 평가를 돌릴 수 있도록 실시규정 초안을 보고서에 붙였습니다.
법적 쟁점학교가 공사를 맡길 때, 위험성평가 바깥의 질문
학교도 교실 증축이나 보수, 실내 공사를 발주합니다. 한 학교에는 이 부분을 따로 검토해 드렸습니다. 학교가 공사를 어떻게 맡기느냐, 곧 시공을 직접 주도하는지, 한 업체에 일괄로 맡기는지, 공종별로 쪼개 계약하는지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상 지위가 건설공사발주자가 될 수도, 도급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위가 정해지면 따라오는 의무도 달라집니다. 착공 전 최초 위험성평가와 작업 변경 때의 수시 위험성평가, 총공사금액 2천만 원 이상이면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공사금액 1억 원 이상 120억 원 미만이면 건설재해예방 전문지도기관과의 기술지도 계약이 대표적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또 다른 문제를 던집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건설공사발주자를 도급인에서 따로 빼 두는 것과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에는 그런 예외 조항이 없어 공사 중 중대재해가 났을 때 발주한 쪽이 제5조(도급·용역·위탁 관계의 의무) 책임을 지는지가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반가운 조항도 하나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3호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위험성평가 절차를 마련해 실시하고 그 결과를 보고받으면,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절차를 반기마다 점검한 것으로 봅니다. 정기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해 두는 일이 곧 경영책임자 의무를 이행한 근거가 되는 셈입니다.
우수 관행잘하고 있는 것도 적어 둔다
위험성평가 보고서가 지적만 늘어놓으면 학교는 방어적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세 학교 모두 잘된 점을 먼저 적었습니다. 두 학교는 배전반·분전반 안쪽 충전부를 절연판으로 덮고 그 위에 회로 이름표를 붙여 두어, 점검하는 사람이 맨손으로 전기에 닿을 일을 줄이고 차단할 회로를 바로 찾을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다른 학교에도 그대로 권할 만한 관행입니다. 나머지 한 학교는 앞서 말한 청취조사의 수준이 높았습니다. 현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만 아는 위험이 이미 글로 남아 있다는 것, 위험성평가에 근로자를 참여시키라는 법의 취지가 가장 잘 살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마무리학교 행정실이 내일 확인할 다섯 가지
위험성평가 결과를 받기 전이라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열쇠 꾸러미를 들고 한 바퀴만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 물탱크실·수조·배수 구덩이 목록이 있는가 — 들어갈 일이 생기면 누가 가스를 재고 누가 밖에서 지켜보는지 정해져 있는지 확인합니다.
- 기계실 펌프 축에 덮개가 있고, 밸브마다 정상 상태가 적혀 있는가 — 쓰지 않는 배관이 섞여 있다면 표시부터 합니다.
- 정수기·개수대·냉방기 옆 바닥에 멀티탭이 놓여 있지 않은가 — 있다면 벽으로 올리거나 방수형으로 바꿉니다.
- 사물함·책장·선반 맨 위에 무거운 물건이 있는가 — 허리 높이 아래로 내리거나 고정합니다.
- 미화·시설 담당자가 쓰는 제품의 MSDS가 비치되어 있고, 창고의 연료와 공구가 떨어져 있는가 — 급식실만 갖춰 두고 끝내지 않았는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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